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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스님 - 참나 (본래 성품)에 대한 가르침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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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광제 작성일15-03-08 09:36 조회7,742회 댓글0건

본문

※ 자신이 불교 신도이거나, 타종교 신도이거나, 무종교이거나,  글의 내용이 전하고자하는 주 내용만 참고하시고, 이것은 옳다, 이것은 옳지않다 하는 분별을 하거나, 말이나, 문자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삶이나 신행생활의  참고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집중의 4단계'『윤홍식의 수심결 강의』, 윤홍식, 봉황동래.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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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다음카페 '화계사 포교사회' 中에서 ]

 

숭산스님 - 오직 모를 뿐!

 

항상 제가 말씀드리지만
우리 마음을 텅 비어서 허공과 같이 될 것 같으면
우리 몸뚱아리가 문제가 아니어.
우리 마음이 아주 맑은 허공과 같어.
 
그때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의식이 나와 아무 관계가 없어.

내 마음이 맑은 거울과 같어.
 
그래서 비치는 대로, 하늘은 푸르고, 물은 흘러가고, 

새는 낭랑하고, 개는 멍멍 짖고,

설탕은 달고, 소금은 짜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전체가 진리 아닌 것이 없다 이거란 말이여.

 
그럼 해가 서산에 뚝 떨어지고, 

달이 동산에 오르는 것이

어찌 진리가 아니겠느냐 이거란 말이여.

어찌 부처님의 본래면목이 아니며
우리 본래면목이 아닐까보냐 이거여.

그대로 환한 거란 말이여.
 
전번에 우리가 배웠던 말이
약인욕식불경계(若人欲識不境界)

당정기경여(當淨其竟如)라.

 
내가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했을 땐,

그 마음을 깨끗한 그 마음을 허공과 같이
텅 비워라 했단 말이여.
 
여러분들이 생각을 내면 여러분들의 마음과 내 마음이 달라져.

 

여러분들의 생각을 딱 끊을 것 같으면,

여러분들 마음이나 내 마음이나 부처님 마음이나
관세음보살 마음이나 예수님 마음이나 하나님 마음이나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이말이여.

 
똑 같다 이거란말이여.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엇인가.
무(無)자로 화두를 들던 마삼근(麻三斤)을 화두를 들던
내가 무엇인가, 시심마(是甚麽) 화두를 들던

어떤 화두를 들던 모를 뿐이여,
 
알려고 하기 때문에 벌써 그르친다 이거란말이여.
모를 뿐인 것은 벌써 생각이 꽉 막힌 자리다 이말이여.

 

그걸 언어도단(言語道斷)하고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
모든 도가 다 끊어지고 마음으로 행할 것이 멸했다 이거라.
마음이 움직일 수 없는 그 자리다 이거라. 

 

마음이 없는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는 것은
생각이 뚝 끊어진 자리라 이거란 말이여,
 
생각이 뚝 끊어진 생각 이전의 세계여.
생각 이전의 세계는 벌써 내 마음이 맑은 학과 같이 텅빈 자리다 이거란말이여.

 

생각 이전의 세계 텅빈 자리를 적멸이라 하기도 하고
우리 본래 성품이라고도 한다 이말이여.

 

그래서 그것을 우리는 정각기성(正覺基性)이다,
옳게 깨닫는 성품이다 이렇게 봤다 이말이여.
 
그 자리가 바로 우리 본 성품이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생각을
딱 오직 모를 뿐인 그 경계를 끌고 나갈 때에 생각 이전의 세계여.

 

생각 이전의 세계는 본래 본 성품이다 말이여.
 
내 생각 이전의 세계는 내 본 성품이여.
그러면 이 주장자의 본 성품이나 이 소의 본 성품이나
또 혹은 일월성신 산하대지 삼라만상 본 성품이나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똑 같다 이거란 말이여.
똑 같은 본 성품이다 이거여.
 
그럼 내가 무엇인가?

 

의심을 '모를 뿐' 인 그 자리를 끌고 나갈 때
혹은 '마삼근' 하고 '모를 뿐' 이 그 자릴 끌고 나갈 때에
혹은 '무~'하고 '모를 뿐!' 인 그 자리를 끌고 나갈 때에
벌써 나는 대우주와 하나가 되고
일월성신 산하대지 삼라만상과 하나가 됐단 이거란 말이여.
 
그것을 우리는 원점(原點)이다 그래,

근본되는 점 원점이라 그런 말이여.

 

그렇기 때문에 그 모를 뿐인 것이 그대로 원점이여.

원점이 그대로 모를 뿐이여.

 

그것이 화두가 돼. 모를 뿐인 것이 마삼근이여.
모를 뿐인 것이 똥막대기여. 모를 뿐인 것이 무자여.
그냥 모를 뿐인 것을 끌고 댕길때 벌써 그 이름이 모를 뿐이여.

 

이름이 마삼근이여. 이름이 마른 똥 막대기여.
이름이 부처여, 이름이 마음이여. 이름이 불성이여. 이름이 여래여.
전부 여러가지 이름을 다 붙일 수가 있어.
 
하지만 그 자리는 원래 생각 이전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름도 없고 모양이 없어요.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고 말이 끊어지고 언어도단이여.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꽉 막힌 자리다 이말이여.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자리. 생각 이전의 세계다 이말이여.
그렇기 때문에 말도 없고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고

말도 끊어지고 생각도 끊어진 자리여.
 
다만 내가 무엇이냐 모를 뿐인 것을 끌고 나갈 적에
나와 대우주와 일월성신 산하대지가 딱 하나가 된 자리다 이말이여.

 

숭산스님 녹화테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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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숭산스님 '세계일화' - '현대인의 삶' 中에서 ]

 

※ 녹색 <      >  부분은 제가 이해를 돕기위해 올린 내용입니다.

 

(중략)

 

제가 조금 전 악!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악! 소리를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그 소리는 생각이 끊어진 자리 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말과 글로써 표현 할 수 없는 자리 이므로, 같다. 다르다고 말을 하게되면 이분법

을 만드는 것(있다. 없다 즉. 有無에 빠짐)이므로, 개구즉착(開口卽 : 진리의 세계는 입을 열면

곧 참모습과는 어긋난다는 말. 말로써 선(禪)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하면 십만 팔천리나 멀어진다

는 뜻) 에 떨어지게 된다. 그 자리는 오직 어떤 행동이 필요하다.> 

 

<'악!'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  .임제선사의 '할' .덕산선사의 방망이. 구지선사가 손가락 하나를

 세운 것. 방바닥을 치는 것. 주먹을 내미는 것. 주장자(주장자는 우리의 본성을 표현한다)를

 휘두르거나, 주장자로 '꿍'하고 법상을 치는 것..... 은  문자가 아닌 행동으로써 우리의 불성.

 참나를 표현 한 것이다.> 

 

 

생각이 끊어 졌다면 무엇이 있습니까?

 

상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고. 듣고. 냄새 맡고.맛보고. 접촉하고. 느끼고

.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작용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심행처멸(心行處滅); 오직 모르는 단계. 의식이 끊어진 자리>

 

안. 이. 비. 설. 신. 의의 자리가 끊어졌다면 우리의 본래 성품이 드러납니다.

 

본 성품이 드러날 것 같으면  

다시 안. 이. 비. 설. 신. 의가 되살아 난다는 말입니다.

 

<끊어졌던 모든 의식이 다시 되살아 나는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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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 주지 '원덕스님'의 설명]

 

우리 마음에는 진여문眞如門생멸문生滅門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여문과 생멸문은 하나인 것입니다.

 

수행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정법을 열심히 하게 되면 궁극에는,의학적인 신경이 아닌,

의식意識의 신경神經이 모두 끊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일체를 모르게되는데,

 

이것을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 신경이 살아나는데,

 

5근根(안이비설신)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육식六識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칠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

8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의 지혜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멸寂滅(실상)과 지혜智慧(현상)를 함께 공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도, 공, 연기,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은 참으로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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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 안. 이. 비. 설. 신.의'가,   다시 '안. 이. 비. 설. 신. 의'가 되는 것은,

'나'라는 생각이 없는 한,  안. 이. 비. 설. 신. 의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코로  냄새맡고, 신체로 접촉하고, 느끼고 하는 것이

전체 나와 더불어 둘이 아닙니다.

 

하늘은 푸르고, 개는 멍멍짓고, 설탕은 달고, 소금은 짜고, 덥고, 차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둘이 아닙니다.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와  같이 전체와 나와 더불어 둘이 아닌 진리라는 것이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맛보고. 접촉하고. 느끼고

하는 것이 둘이 아닐 때에 보고. 듣고. 냄새 맡고.맛보고. 접촉하고. 느끼고 하는

그 자체가 진리입니다.

 

그대로가 실상입니다.

 

그대로가 다 본래면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상백일홍(백일홍이 가을 하늘을 찬란히 비춘다)이란,

백일홍이 산에 가득 핀 그 자체가 내 본래면목입니다.

 

그것이 모두 부처님의 얼굴이요,  우주의 근본이 그 안에 다 있습니다.

 

우리가 그 경계에 가게되면 <空의 경계를 체험 하는 것 .體得>

참말로 기쁘기 한량없고 항상 삼세제불과 같이 우리가 생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생각이 조금전 잠깐 동안 죽비를 치고 참선을 한 1분 동안을 했는데도

별의 별 생각이 다 나타납니다. 가지 자기 망상이 마음 속에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하는 것이

우리 중생들의 마음입니다.

 

그 생각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느냐? 

또 어디로 가는 것이냐? 

 

하는 생각을 계속해서 할 것 같으면<一念을 하는 것> 생각이 없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무념처(無念處)로 들어  갈 것 같으면, 보고. 듣고. 냄새 맡고.맛보고. 접촉하고. 느끼고

하는 것이 전체가 다 진리요. 부처님의 얼굴이요. 나의 본래면목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려쳐 주신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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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산스님 - 선의 3종류의 깨달음 ]

 

제자들이 선의 깨달음과 관련하여  선사님께 여쭸습니다.

선사님께서 앞에 목탁을 들고서, 

 

" 이 목탁을 목탁이라 부르면 이름과 모양에 집착 하는 것이고, 

  목탁이라 하지 않으면, 空에 집착하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것은 목탁이냐? 목탁이 아니냐? " 라고 물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선사님께서 설명해주신 내용과 함께 ,추가로  이해를 돕기 위해  정리 한 것입니다.

 

시각(실체) : 악! .임제선사의 '할' .덕산선사의 방망이. 구지선사의 손가락 하나 세운 것.

   방바닥을 치는 것.  주먹을 내미는 것...   말과  문자가 아닌 행동으로써 우리의 불성.

   참나를  표현 한 것.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것부처. 나. 목탁. 소리. 할. 방....

  이러한 일체가 하나다. 모든 것은 만법으로 돌아간다.

  (첫 깨달음)

 

본각(실상) : 하늘은 파랗고 물은 푸르다. 벽은 하얗고 목탁은 갈색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3*3= 9 이다....

  

   모든 것이 이러할 뿐! 이라는 진리를 얻는 것이다.(如如)

 

구경각(실용) : 목탁을 치셨다.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 차나 한잔 하거라 !

 

    궁극적인 깨달음 . 진리를 쓰는 법을 아는 것

 

    바로 이러할 뿐! 을 깨닫는 것이다.(卽如)

 

    대자대비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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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를 깨달으면, 진리를 쓰는 법을 알아야 한다.<실용의 세계. 卽如(찰나의 세계)>

         

  올바른 길(실체)을 찾아, 진리(실상)를 찾으며,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순간 순간 올바른 삶(실용)으로 살아가야 한다. 

 

  당신의 견해(나). 조건(나의). 상황(나를)을 내려 놓아라.

   

  오직 모를 뿐 인!  인 마음으로

 오직 할 뿐!   으로 정진 또 정진하라.

 

 '오직 모를 뿐인 마음'과,  '맑은 마음'을 얻어,

  어떻게  그 맑음과 지혜를  사용해야 하는가?

 

 대자대비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 출처 : 함양 문수사 / 작성자 : 光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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