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스님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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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광제 작성일15-03-13 10:05 조회7,149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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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의 4단계'『윤홍식의 수심결 강의』, 윤홍식, 봉황동래. 2007.
<출처: 네이버 카페 '홍익선원' 中에서>
숭산스님 법문
2003. 6. 25 박산 초
1. 대오의 법칙
조동종은 조용히 그 호흡을 관찰하며 일체 것을 끊어 버리고 오직 그 호흡 하나로 정신통일을 해 나가기 때문에 지관타좌(只管打坐) 타성일편(打成一片)을 이룬다.
지관타좌란 오로지 한 숨결에 맡겨서 일어나는 번념(煩念)을 주저앉힌다는 말이며 타성일편은 모든 것을 똘똘 뭉쳐 하나를 형성한다는 말이다.
임제종은 간화선으로 성성적적(惺惺寂寂), 풍파를 가라앉혀 맑은 바다를 형성한다. 삼라만상이 그 안에 소소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계종은 그것을 관하는 놈, 숨결을 헤아리는 놈이 누군가 철저히 의심하여 간다. 그래서 '단지 모른다는 것을 알 뿐'의 시심마선(是甚禪- 이뭣고 선)이라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나무할 때 나무하고 밥할 때 밥하는 사람, 불 때고 장작 패는 것이 그대로 신통이 되는 선, 이것이 조계선이다.
3초 5초 호흡을 조절하며 숨을 헤아리다가 1분 2분 나중에는 구식(口息) 마저 잊어버리고 복식호흡(腹式呼吸)을 하다가 8만 4천 털구멍으로 무식의식(無息意息)을 하게 되면 우주는 호흡 속에 타성일편,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며, ‘마른 똥 막대기’, ‘삼 서근’을 의심하다가 성성적적, 물아심경(物我心境)이 일치하면 산산수수가 각기 완연히 나타난다.
대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하고 외치고 다니다가 ‘너는 너를 아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나는 나를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듯 물이 물을 씻지 못하고 불이 불을 태우지 못하는 원리를 알아,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경계에 들어가면 곧 스스로 그 성품을 보고 이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것이니 이것이 조사선이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고 어느 것이 높고, 어느 것이 얕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각기 그의 근기를 따라 마음을 이끌어 나가다가 자기 소질에 의해서 자기 선을 개발하는 것이니 아시타비(我是他非)를 논할 필요는 없다.
2. 시간과 공간은 내 마음으로부터 생겨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삼라만상이 마음으로
만들어진다 하셨으니
마음으로 인해 만물은 생성됩니다.
마음이 굳건하면,
새 천년에는 고(苦)가 없을 것이며,
마음이 약해지면
시공에 이끌리어 삼계의 화택 속에
머무르게 됩니다.
세상은 끝이 없습니다.
1999년이 가고
새 천년이 온다고들 하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생각이 없으면 새 천년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생각을 놓아버리고
마음을 단전으로 모아서
매일 호흡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면
이 세상의 고(苦)는
호흡과 함께 사라집니다.
모든 것은 호흡 안에 있습니다.
호흡 안에서 모든 업장은 소멸되어,
이세상 삼라만상 모두가
환희로 바뀌어집니다.
아마,
이러한 수행이
일반 범부에겐 힘들겠으나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업장소멸의
한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정진으로서만
업장이 소멸될 수 있습니다.
악업이 소멸되면,
새 천년이 오더라도 고(苦)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악업이 소멸됨을 어찌알까?
끊임없이 어떤 것이
참 ‘나’인지를 관찰하십시오.
숨을 들이 쉬면서 들이 쉬면서
그리고 내 쉬면서 내 쉬면서
반복하고 또 반복하십시오.
참 ‘나’는 무엇인가? 이… 뭣… 고…?.
아주 큰 의심덩어리로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러나 대답에 얽매이지는 마십시오.
오로지 행하면
비로소 업장은 소멸됩니다.
업장이 소멸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호흡 속에서
환희심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3. 그냥 행해라
내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여러분의 마음을 휙휙 훑고 지나가는 망상들을 쫒으면 여러분과 나는 완벽하게 분리된다. 그러나 모든 생각을 끊어서 단지 이 말을 듣고 있는 것으로 돌아오면 완벽하게 우리는 하나가 된다.
생각에 대한 집착을 끊으면 내 말과 여러분의 듣고 있는 귀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 둘이 아니요, 그것이 이미 부처님이고 예수님이다.
이것은 한국 사람만 경험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나 독일, 중국 사람만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남자만 경험하는 것도, 여자만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때때로 이것을 ‘원점(primary point)’이라고 부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우리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공의 마음을 유지할 것인가? 그것이 절대의 상태이며, 우리가 원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원점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근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
근본 원인이 제거되면 우리의 환경이 바뀌어 좋은 결과를 얻는다. 고통도 변할 것이고 그러면 자비심과 행복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연기의 가르침이다.
그러면 어떻게 근본 원인을 제거할 것인가.
단지 하나의 마음을 가지면 된다. 뭔가를 할 때 그냥 행하면 된다. 단지 그냥 하면 된다. 이 그냥 행하는 마음에는 주체도 없고 객체도 없다. 안과 밖이 하나가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우주 에너지와 연결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원점이라고 부른다. 원점을 유지하면 차츰 근본 원인이 사라진다. 생각이 단지 원인을 만들뿐이다. 생각을 끊으면 근본 원인은 태양열에 증발하는 물처럼 자연스레 사라진다.
열심히 수행하면 이것은 매우 쉽다. 그러나 자꾸 생각을 하면 그것은 우리의 업을 만들고 업은 태양은 가려 결국 근본 원인인 물은 증발할 수 없게 된다. 어떤 수행을 하든지 커다란 의심을 가지고 그냥 행하라.
노력하는 마음과 오직 한가지의 의문을 가지면 어떤 종류의 수행이든 본성을 얻는데 도움을 주며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뭔가를 하고 있을 때 그냥 행하라. 이것이 법화경의 핵심이다.
4. 보이는대로 보는 경지가 바로 그소식
성경에 보면 ‘네가 적멸처(寂滅處)에 이르면 하나님을 알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적멸처가 하나님의 실체란 말입니다. 이 적멸처란 불교에서 말하는 본래 면목자리이고, 극락이고, 열반인 바로 그 세계와 꼭 같은 것입니다.
이 온 우주는 늘 변화에 변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고정 불변하는 것이 없어요. 매순간 어떤 것이 생겨나고〔生〕, 다음 순간 없어져 버립니다〔滅〕. 이 생멸의 변화는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상관없이 계속하고 있어요.
이러한 생멸의 순간을 여의어 버린 경계가 바로 ‘적멸’의 상태입니다. 곧 고요이고, 극락이며, 하나님이요, 나요, 깨달음인 것입니다.
전에 나는 폴란드에서 신부님, 수녀님들에게 참선을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만, 최근 서구인들이 참선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마 다들 아실 것입니다. 이제 그 만큼 참선은 세계인의 공유물이 되었다하는 이야기입니다. 불교만의 전용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서구인들은, 참다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참선을 해야 한다고들 생각하고 있어요.
참다운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 이전의 세계, 분별이 없는, 생멸의 분별조차 없는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때 나라와 온 인류세계는 평화를 맺고 모든 중생이 다함께 성불하여 열반에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참선 지도를 하면서 우리 방식대로 「반야심경」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참선에 들어가기 전에 꼭 하나님을 경배하는 어떤 글귀를 외웁니다.
그 내용은 이런 겁니다.
“하나님이란 깨끗하고 텅 빈 자리로, 거기에서 모든 세상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본래 성품이 되어 시끄럽고, 조용하고, 밝고 어두운 것 등의 분별이 생겼다.”라고
부처님의 깨달으신 자리, 서산대사, 경허선사가 깨쳤다는 그 소식이란 모두 같은 것이고 그것은 생각 이전의 자리, 즉 텅 빈, 적멸의 자리로 다 똑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아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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